
646일 된 아이
정확히 646일, 21개월이 되니 아이의 입이 부쩍 바빠졌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고 장난으로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가 좋고, 아빠가 없을 때는 엄마가 좋다고. 그 대답을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이미 눈치가 있다.
본인의 의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출장을 가거나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도, 주변에 같은 또래 아이가 지나가면 자꾸 눈길이 간다. 내 아이 또래라는 것만으로도 괜히 반갑고 뭉클하다. 아빠가 됐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4박스, 100권의 책이 도착했다
오늘 집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누나가 조카들에게 보여줬던 책들이다. 2박스. 전날 부산에서 가져온 책도 2박스. 합치면 총 4박스, 약 100권이다. 현관 앞에 쌓인 박스들이 층층이 올라가 있었다.
집에도 이미 책이 많아서 이제 책장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와이프는 택배를 열기도 전에 줄자를 꺼내 책장 자리를 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역시 다르다 싶었다.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엄마 아빠랑 같이 읽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서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은 특히 동물책과 공룡책에 관심이 많다. 공룡 그림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뭔가를 말한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표정은 확실하다.
장난감보다 책 앞에서 더 오래 앉아있는 걸 보면 아이의 성향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을 없앤다
와이프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TV를 켜지 않는다.
아이가 잠든 뒤에는 조금씩 보기도 하지만, 같이 있을 때 TV는 그냥 벽에 걸린 장식품이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함께 있을 때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나는 아직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의 동참하는 수준까지 왔다. 핸드폰 화면을 보다가 아이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된다.
독서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냥 책이 많이 보이게만 한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도록. 그게 전부다.
요즘 아이의 말이 부쩍 늘었는데, 와이프가 그 환경을 만들어준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근 후 육아의 시작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5시 50분에서 6시 10분 사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가 들어오는 순간, 피곤했던 기분이 달라진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간다. 이것저것 같이 하자고 한다.
일을 마친 상태라 몸이 무겁지만 같이 한다.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어주고, 역할 놀이도 함께하고. 그렇게 퇴근 후 육아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솔직히 몸이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충전이 되는 시간이라는 걸 안다. 아이의 웃음 하나가 하루의 피로를 다 날려준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아빠 무릎 위에서 읽는 책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아빠 무릎에 앉아 같이 책을 보는 것이다.
작은 등이 내 가슴에 기대온다. 책을 펼치면 아이가 두 손으로 책장을 잡는다.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재밌는 표현, 무서운 표현을 하면 아이가 웃기도 하고 잔뜩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가끔 내가 한눈을 팔면 아이가 말한다.
"아빠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집중하라는 말이다. 그 짧은 두 글자에 웃음이 났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번에는 와이프가 책을 읽어준다. 잠들기 전 10~20분 독서는 이미 아이의 하루 루틴이 됐다.
나도 매일 새벽 1시간 독서를 한다. 인문학과 경제 분야. 아이와 나, 둘 다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독서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
말이 늘었다. 어휘력과 문장 구조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혼자 역할 놀이를 할 때 보면 자기만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책 속 등장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면서 표정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정서 발달도 느껴진다.
집중력도 강해졌다. 내가 한눈팔면 바로 티가 난다.
좋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오늘도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줄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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