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태어났다
2023년 3월 26일, 오후 4시 52분.
우리 아이는 그 시각에 세상에 나왔다.
그전에 한 번의 아픔을 겪었다. 두 번째로 찾아온 생명이었기 때문에 분만실 앞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분만실 앞까지만 허용됐다. 문 너머에서 와이프가 얼마나 힘든지를 소리로만 들어야 했다.
자연분만을 시도했다. 진통이 오래 이어졌다.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전환됐다.
나중에 와이프가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제왕절개 할걸. 너무 힘들었어."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 진통을 온몸으로 버텨낸 사람이 하는 말이었으니까.
아이는 귀한 손님이다
어느 교수가 말했다.
"아이는 우리에게 온 귀한 손님이다. 귀한 손님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존재이며, 온전히 애정을 쏟아주고, 좋아하는 일은 응원해 주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언제든 떠날 사람이다."
그 말이 처음엔 낯설었다. 언제든 떠날 사람이라는 말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다. 내 연장선이 아니다. 잠깐 우리 곁에 머물다 갈 귀한 존재다.
오늘도 귀한 손님을 극진히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조건 없는 사랑만이 자존감을 높인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생존권이 달려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공부를 잘할 때만, 말을 잘 들을 때만, 성공했을 때만 예뻐한다면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지기 어렵다. 그 기쁨이 조건부라는 걸 아이는 아주 일찍부터 감지한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때만 자존감이 자란다.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고, 아이는 아이의 인생이다. 자신의 아쉬움이나 실패를 아이를 통해 보상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만지고 쓰다듬기만 해도 사랑을 느낀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물리고, 눈을 맞추고, 안아주고, 웃어주는 것.
이렇게 부모가 반응하고 보살피지 않으면 아이의 두뇌 발달과 인격 형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단순히 만지고 쓰다듬기만 해도 아이는 사랑을 느낀다.
아이가 눈을 맞추려 할 때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힘들어서 빨리 잠들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적 있는가.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이는 지금 이 시간도 엄마 아빠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수술을 앞두고
우리 아이는 수술 예정이 있다.
방광요관역류. 소변이 정상적인 배출 경로에서 벗어나 거꾸로 흐르는 현상이다.
선천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내려앉았다. 자책감도 들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하고. 아직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자주 열이 나서 감기인 줄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아이가 자주 열이 난다면 한 번쯤 의심해보시길 권한다.
의사 선생님이 세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항생제를 1년 더 먹어보는 것, 내시경 수술, 복강경 수술. 확률적으로 가장 좋다는 복강경 수술을 선택했다. 의사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소아과에 수술할 의사가 부족해 예약이 계속 미뤄졌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다. 그날까지 잘 먹이고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잘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 우리가 늘 옆에서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가질지 설계도를 그려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아야 한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26일 오후 4시 52분. 그 시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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