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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투자일기] 눈 오는 날 인헌시장 어묵 — 작은 이모의 "방 따뜻하지?"

by 우노디야(백운호) 202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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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에 내린 눈

업무를 마치고 대전에서 광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광주에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에 처음엔 KTX를 예약해뒀다. 실시간으로 날씨를 확인하다가 저녁에는 눈이 없다는 예보를 보고 차표를 취소했다. 외근할 일이 많아 차를 가지고 내려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예상대로 전북 쪽에서 눈이 쏟아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송이에 부딪혀 흩어졌다. 제설차를 따라 비상깜빡이를 켜고 50km로 서행하며 내려왔다.

올해는 작년만큼 눈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눈 구경을 실컷 했다. 아, 겨울이구나 싶었다.


낙성대역 반지하, 그리고 어묵

눈이 쌓인 도로를 달리다 보니 문득 서울 자취 생활이 떠올랐다.

그때 가장 싼 가격으로 낙성대역 인헌시장 근처 반지하에 살았다. 월세가 30만 원이었던가. 아무튼 엄청 싼 곳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게 낯설었다. 지하철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 좁은 지하철에도 악착같이 타려는 사람들, 노선 없이는 탈 수 없는 교통. 부산 사람 눈에는 서울이 너무 빠르게 돌아갔다.

아침에는 알람이 필요 없었다. 반지하 작은 창문 틈으로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군대 구보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귀뚜라미가 얼마나 많은지 자다가 얼굴 위로 지나가기도 했다. 그게 반지하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나를 반겨주는 게 하나 있었다.

인헌시장의 어묵이었다.

퇴근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헌시장 쪽으로 향했다. 겨울 골목에는 어묵 국물 냄새가 멀리서부터 풍겼다. 빨간색, 파란색, 흰색으로 가격대를 구분해뒀던 꼬치들이 가지런히 국물에 담겨있었다. 부산 사람이라서 어묵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미식가처럼 알 수 있는데, 그 어묵이 진짜 맛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몸 전체가 따뜻해졌다. 그 온기가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줬다.

서울 생활에서 가장 맛있었던 게 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한다.

눈 오는 날 인헌시장의 어묵.

서울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도 그 맛이 기억에 남아있다는 건 그냥 맛있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서울의 첫인상

서울은 솔직히 첫인상이 좋지 않다.

부산 촌놈이 서울에 와서 두 번이나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상처도 많은 곳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작은 이모가 계셨기 때문이다.


작은 이모

어머니는 5남매다. 위로 오빠 셋, 언니 하나, 아래로 하나. 그중 막내가 서울 작은 이모다.

친척 중에 유일하게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신다. 이모부와 결별하고 나서 오랫동안 두 아들을 혼자 키우셨다.

사촌 동생이 두 명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밖에 없다. 둘째는 몇 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 친구와 함께 타다가 사고가 났고, 친구는 목숨을 건졌지만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그때 이모가 매일같이 우셨다. 오랜 시간 혼자 두 아들을 키워온 이모에게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머니는 서울 가기 전 늘 말씀하셨다.

"이모한테 잘해야 된다. 이모한테 폐 끼치는 행동을 하면 바로 내려와라."

그만큼 어머니에게 작은 이모는 둘도 없는 소중한 동생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작은 이모는 나를 늘 아들처럼 대해주셨다.

"밥은 먹었어? 몇 시에 오니? 용돈은 있어?"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물어주신다.


가족이라는 안식처

우리 삶에서 가족은 가장 좋은 안식처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문제를 공유하며 위안을 삼는 곳. 함께 보내는 시간만으로 삶의 행복이 달라지는 존재. 소소한 웃음과 기쁨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가장 든든한 힘이다.

눈 오는 겨울이 되면 작은 이모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방 따뜻하지?"

그 한마디가 지금도 따뜻하다.

전북에서 쏟아지던 눈, 서행하던 차 안, 그리고 반지하 창문 틈으로 들리던 발자국 소리. 그 시절이 다 그 한마디 안에 들어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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