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후 냉장고 앞에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냉장고 앞으로 간다.
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얼굴로 밀려온다. 그 안에 항상 기네스가 몇 캔 있다. 캔을 집어 들면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퇴근 신호처럼 느껴진다.
기네스를 따는 순간, 특유의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맥주 향이 올라온다. 첫 모금을 넘기면 부드러운 크리미한 거품이 혀 위에 퍼진다. 진하고 깊은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그날의 스트레스가 함께 내려가는 것 같다.
다 마시고 나서 캔을 흔들면 안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작은 구슬이 굴러다니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끝났구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방식이 이것이다.
오죽하면 버킷리스트에 아일랜드 여행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기네스의 고향에서 직접 마셔보고 싶다고 와이프에게 한 번씩 떼를 쓰기도 한다.
9,000년짜리 임대 계약
창업자 아서 기네스는 1725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구간 관리인이었고, 아서는 어릴 적부터 맥주 양조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1759년, 더블린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을 임대했다. 계약 기간이 놀랍도록 9,000년, 연간 임대료는 단 45파운드였다.
처음에는 일반 에일 맥주를 생산했지만, 점차 진하고 강렬한 포터맥주와 스타우트에 주력했다. 로스팅된 보리의 독특한 맛과 깊은 색감이 현재 우리가 아는 기네스 스타우트의 시초가 됐다.
9,000년 임대 계약이라는 발상 자체가 이 사람의 확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준다.
기네스북은 맥주 논쟁에서 시작됐다
기네스 로고의 하프는 아일랜드 전통악기 켈틱하프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금도 아일랜드 국가 문장의 일부다.
그리고 기네스 월드레코드, 즉 기네스북은 1955년 기네스 맥주 회장 휴 비버로부터 시작됐다.
사냥 모임에서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새가 무엇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가 세상의 다양한 기록을 정리한 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탄생한 것이다. 원래는 술집에서 논쟁을 해결하려는 의도였다. 지금은 맥주 회사와 분리된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술자리 논쟁 하나가 세계적인 기록집이 됐다.
캔 안의 작은 구슬, 위젯
딸랑딸랑 소리의 정체가 항상 궁금했다.
기네스 캔 안에는 다른 맥주에는 없는 것이 들어있다. 위젯이라 불리는 작은 플라스틱 구슬이다.
내부에 질소가 충전돼 있어, 캔을 열 때 압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질소가 빠르게 방출된다. 그 질소가 맥주 전체에 퍼지며 풍성하고 크리미한 거품이 만들어진다. 일반 탄산보다 기포가 훨씬 작아, 마치 생맥주를 마시는 듯한 질감이 된다.
그 딸랑딸랑 소리가 사실은 생맥주 맛을 만들어내는 장치의 소리였다. 알고 나서 더 좋아졌다.
하나의 제품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네스를 공부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다.
놀라운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항상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커넬 샌더스는 하나의 치킨 조리법으로 KFC를 시작했다. 아돌프 쿠어스는 단 하나의 양조장에서 하나의 제품으로 1947년부터 1967년까지 1,500퍼센트 성장을 기록했다. 애플도, 스타벅스도 자신만의 단 하나를 일구어냈다.
들쭉날쭉한 성공은 집중력이 여러 곳에 퍼져있다는 뜻이다. 흔들림 없는 성공은 하나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모든 성공의 핵심은 오랜 시간이다. 성공은 연속해서 쌓이며, 단 한 번에 하나씩이다.
퇴근 후 냉장고에서 기네스를 꺼내며 오늘도 그 생각을 한다.
나의 하나는 무엇인가.
'투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투자일기] 여수 딸기모찌와 장인정신 — 빈손으로 돌아온 이유 (0) | 2025.01.03 |
|---|---|
| [투자일기] 와이프가 생년월일을 물었다 — 사주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 (2) | 2025.01.02 |
| [투자일기] 안녕 2024, 안녕 2025 — 비교할 대상은 어제의 나다 (0) | 2024.12.31 |
| [투자일기] 무안공항 사고 앞에서 — 애도와 배려에 대하여 (2) | 2024.12.29 |
| [투자일기] 큰 박스 작은 장난감 — SNS라는 과대포장에 속지 말자 (3) | 2024.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