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출장, 사고 싶었던 것
여수 출장을 다녀왔다.
보통 출장을 가면 시간이 날 때 맛집에 들러 포장해서 오는데, 이번엔 그냥 빈손으로 왔다. 사실 가져오고 싶었던 게 있었다.
딸기모찌.
찹쌀떡 안에 신선한 딸기와 달콤한 팥소가 들어간 일본식 디저트다. 일본에서는 이치고다이후쿠라고 불린다. 이치고는 딸기를, 다이후쿠는 큰 복을 의미한다. 떡 안에 복을 가득 담는다는 뜻이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미 알고 있던 디저트다.
그런데 여수에서 딸기모찌가 유명한 이유가 있었다. 1968년 1대 할머니께서 일본 오사카에서 찹쌀떡 기술을 전수받아 시작하셨고, 지금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 디저트가 여수의 대표 간식이 됐다.
가게 앞에 서서 진열대를 들여다봤다. 하얀 찹쌀떡 안으로 빨간 딸기 끄트머리가 살짝 비쳐 보였다. 옆 사람이 하나를 베어 무는 순간 딸기 향이 코끝에 스쳤다.
사고 싶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
아저씨스러운 계산
한 개 가격이 3,000원에서 5,500원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꽤 비싼 가격이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딸기 1kg 가격이 15,590원 정도, 찹쌀떡 하나는 시중에서 1,000원~1,500원 정도다.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떡집에서 찹쌀떡을 사고, 마트에서 딸기를 사서 집에서 함께 먹으면 어떨까. 와이프는 분명 싫어하겠지만.
너무 아저씨스러운 발상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잠깐 그런 생각이 든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빈손으로 가게를 나왔다.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가격이 이해됐다.
장인이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에 전념하며 끊임없이 수련하는 사람이다. 전통과 품질을 중시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
1968년부터 3대째 이어진 여수 딸기모찌. 거기에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수십 년의 장인 정신이 담겨있다. 할머니의 손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다시 딸의 손으로 이어지는 그 시간이 가격에 반영된 것이다.
단순히 비싼 데는 다 그만의 이유가 있다. 그걸 이해하면 아저씨스러운 계산은 자연스럽게 접히게 된다.
가치도전이라는 실험
어느 책에서 읽은 문구가 있다.
아직 의미와 목적을 명확하게 찾지 못했다면,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 그냥 웃어주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억지로 만들어낸 미소가 아니라, 몇 년 동안 외딴섬에서 발이 묶여 있다가 처음으로 보는 사람을 향해 짓는 환한 미소. 그 감정을 관찰해보라고.
누군가의 삶에 가치를 더해줌으로써 의미와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가치는 그렇게 시작된다.
여수 딸기모찌를 만든 1대 할머니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으셨을까. 내가 가진 기술로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기쁨을 더해주겠다는 마음. 그게 3대째 이어지는 장인정신의 뿌리였을 것이다.
나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찹쌀떡 안에 딸기가 아닌, 딸기 안에 찹쌀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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