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도 남자, 전라도 여자, 광주 딸아이
지난 주말, 딸아이와 함께 화개장터에 다녀왔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나는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름만 들어본 곳이었다. 반면 순천 출신인 와이프는 몇 번 와봤다고 했다.
그리고 광주에서 태어난 우리 딸아이.
화개장터는 오래전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며 자연스럽게 문화를 교류했던 곳이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오랜 전통의 시장이며,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도 등장하는 역사적인 장소다.
부산 남자와 순천 여자, 그리고 광주 딸아이가 그 장소에 왔다. 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 없이도 사람이 넘쳤다
3월,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이 엄청났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찼고, 진입로부터 차량이 줄줄이 밀려 있었다. 벚꽃 시즌에 오면 어떨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골목을 걷다 보면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 사이로 온갖 냄새가 섞여 흘렀다. 기름 냄새, 쑥 냄새, 군밤 냄새.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섬진강 벚굴 — 이렇게 큰 굴은 처음이었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건 섬진강 벚굴이었다.
굴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개가 손바닥 크기, 10~15cm 정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섬진강 벚굴은 바다가 아닌 섬진강 하구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 지역에서 나는 자연산 굴이다. 하동, 광양, 구례 일대에서 채취되며 3~4월이 제철이다. 살이 도톰하고 쫄깃하며 바다 굴보다 더 깊고 진한 감칠맛이 난다.
딸아이가 아직 어려서 함께 먹지 못한 게 아쉬웠다. 조금 더 크면 꼭 함께 먹으러 와야겠다.
섬진강 빙어 — 겨울이 남겨놓은 별미
그 옆에는 섬진강 빙어가 있었다.
빙어는 보통 12월~2월 겨울철에 많이 잡히지만 화개장터에서는 봄에도 만날 수 있었다. 크기는 7~15cm 정도의 작은 물고기로, 투명하고 은빛이 나는 몸이 특징이다. 빙어튀김이 으뜸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이것도 딸아이가 크면 꼭 같이 먹어보리라 마음속으로 적어두었다.
섬진강 부꾸미 — 딸아이가 반해버린 맛
그날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섬진강 부꾸미였다.
쑥을 데쳐 곱게 갈고 찹쌀가루와 섞어 반죽을 만든 뒤, 얇게 펴서 기름에 부친다. 거기에 삶은 팥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접어 약불에서 노릇하게 익혀낸다.
달지도 않고 따뜻하고 쫄깃하다. 막 구워 나온 걸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왜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알 것 같았다.
딸아이가 그걸 하나를 거의 다 먹었다. 평소에 잘 안 먹던 아이가 연신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게 충분히 보람 있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 부꾸미를 먹어봤다. 부산 호떡만큼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따뜻하고 구수한 맛이 있었다.
재첩국 한 그릇으로 마무리한 점심
화개장터 안 식당에서 재첩국, 재첩회, 해물파전으로 점심을 먹었다.
섬진강 재첩은 하동의 대표 먹거리다. 맑고 깔끔한 재첩국 한 그릇이 걷고 난 뒤의 몸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딸아이도 국물을 조금 받아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그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다시 오고 싶은 곳
벚꽃 시즌에는 주차가 극한의 난이도가 될 것 같다. 방문 전에 주변 주차장을 미리 알아보고 가는 걸 강력히 추천한다.
벚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됐다. 그 시즌에 다시 한번, 딸아이 손을 잡고 걸어봐야겠다.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광주 딸아이를 데리고, 두 지역이 만나는 이곳에서 또 한 번의 기억을 만들어야겠다.
'여행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행일기] 고창 숨은 맛집 투어 — 도브레만돌 봉골레샤브 + 카페베리 블루베리 요거트 (1) | 2025.07.30 |
|---|---|
| [여행일기] "기차다!" — 딸아이와 순천만정원 스카이큐브, 솔직 후기 (0) | 2025.05.07 |
| [여행일기] 볏짚 향 솔솔 — 무안 두암식당 짚불삼겹살 후기 (1) | 2025.03.21 |
| [여행일기] 조용하고 아늑한 소도시 — 가고시마 2박 3일 여행기 (0) | 2025.03.14 |
| [여행일기] 미세먼지에 삼겹살이 최고라는 말의 진실 — 실제로 효과 있는 식단과 공기청정기 관리법 (0) | 2025.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