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랍장에서 나온 2006년 자격증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자격증 하나가 눈에 띄었다.
2006년에 취득한 기사 자격증이다. 노란 바탕에 한국산업인력공단 도장이 찍혀있는 그 종이가 세월이 꽤 지났는데도 그대로였다.
당시 선배들이 이게 있어야 취업이 된다고 했다. 취업이 쉬워진다는 말에 혹해서 필기와 실기를 준비했다. 퇴근 후 도서관에서 책을 펴고, 주말에는 실기 연습을 반복했다. 합격 발표를 확인하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그때의 결론은 같다.
취업이 쉽게 됐다는 것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더 컸다. 그 시작으로 이후에도 자격증 취득을 여러 개 했고, 공부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자격증은 이론이다, 실무가 아니다
그렇다고 자격증이 만능은 아니다.
자격증은 이론적 지식이나 최소한의 자격을 증명할 뿐, 실제 실무 능력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기업은 문제 해결 능력과 현장 경험을 더 중시한다.
자격증을 지나치게 많이 모아서 저 기업에 꼭 가겠다는 전략은 잘못된 판단이다. 자격증은 취업의 보조 수단이지, 입사에 필요한 태도, 의사소통, 조직 적합성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배의 전화 한 통
어느 날 이직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안전 관련 트렌드라는데, 그쪽으로 일하는 사람 많나요?"
선배가 답했다.
"엄청 많다. 정부에서 밀어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자격증 취득하고 난리야. 나이 드신 분들도, 젊은 애들도."
"와, 전망이 좋은가 봐요."
"그럼 뭐 하냐, 현장에선 엑셀 하나도 못하는데. 우리한테 필요한 건 안전 관련 자료를 정리해주는 거야. 요즘 사람들은 엑셀도 잘 못 해."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역시 자격증은 입장료 같은 거네요. 현장과는 다르네요."
전화를 끊고 나서 서랍 속 자격증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포트폴리오로 취업했다
그렇다고 자격증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격증은 특정 분야에서의 기술과 지식을 인정받게 해주는 입증 자료다. 채용 담당자에게 신뢰성과 역량을 보여주는 보조 자료이기도 하다. 일부 직무는 자격증이 법적으로 필수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 취업하게 된 건 자격증보다 포트폴리오 덕분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자격증보다 포트폴리오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면접에서도 내 경험이 담긴 포트폴리오 질문이 많았다. 자격증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입장료 vs 자유이용권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자격증이라는 입장료를 내고, 포트폴리오라는 자유이용권을 사용해서 여기저기 실무에 적용했다.
입장료만 들고 회사에 들어가면 엄청난 좌절감을 맛볼 수 있다. 회사는 당장 실무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실제적인 능력, 통찰력, 자기 이해를 형성하는 데 경험만큼 중요한 자산은 없다.
지금 여러분은 입장료를 만들고 있는가, 자유이용권을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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