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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일기

[투자일기] 홍어 같은 XX — 25년의 뚝심이 만든 것

by 우노디야(백운호) 2024.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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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에서 시작된 이야기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사택에서 살았다.

공장 옆에 붙어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복도를 지나면 공장 특유의 기름 냄새가 배어있었고, 여름밤에는 창문을 열어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1층에 5가구, 2층에 2가구. 공용 화장실 두 개를 모두가 함께 썼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 줄이 섰다.

여름마다 침수는 기본이었다. 장마가 오면 가족 모두가 짐을 들어 올리는 게 연례행사였다. 겨울엔 연탄 보일러를 수없이 갈아야 했다. 연탄을 집어 들 때마다 검은 가루가 손에 묻었다.

2남 1녀를 키우시면서 아버지는 회사에서, 어머니는 그 회사 지하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하셨다. 어떻게 그 환경에서 우리를 키워주셨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놀랍다.


청천벽력 같은 해고 통보

어느 날, 회사가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두 분이 같은 회사에 다니고 계셨으니, 해고 통보 하나로 두 분 모두 실직하셨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졸업생이었고, 누나와 형은 대학생이었다.

며칠 뒤 우리는 사택을 떠나야 했다. 짐을 싸는 날, 그 좁은 복도를 오가며 짐을 들어 나르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어렸던 나에게는 낯설었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은 밤새 고민하셨다. 상의 끝에 내리신 결론은, 어머니의 전라도 음식 솜씨를 살려 작은 가게를 여는 것이었다.

그 음식이 홍어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하는 음식. 호불호가 명확하고 어르신들만 찾는다는 음식. 그것도 전라도 지역이 아닌 경상도 부산에서 홍어를 하겠다는 것은, 내 눈에는 그냥 무모함이었다.

친구에게 자랑할 수 있는 유명한 프랜차이즈나 커피숍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선택은 달랐다.

"기왕 하기로 한 거면 잘해서 생존하면 되는 거란다. 냄새나서 남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아이템이 승산이 있을 거야."


가게 앞에 침을 뱉던 사람들

오픈 이후 쏟아지는 반응은 냉혹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코를 막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여기가 경상도인데 전라도 음식이 말이 되냐며 욕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날은 가게 앞에 침을 뱉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의 멱살을 잡히신 적도 있었다. 퇴근길 택시에서 승차 거부도 많이 당하셨다.

지역색이 강했던 그 시절, 전라도 사람이 부산에서 홍어 가게를 한다는 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내가 그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홍어 같은 XX."

학교를 다녀오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귀를 막고 싶었다. 부모님께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때마다 말씀하셨다.

"괜찮다, 괜찮다. 언젠가는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거다."

그 말을 하실 때마다 얼굴은 웃고 계셨다. 지쳐 보이는데 웃고 계신 그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다.


25년의 뚝심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한 가게에서 25년을 버텨오신 것도 대단한데, 단골손님이 더 많아진 것이 더 놀라웠다.

조금씩 젊은 사람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경상도 말로 대화하면서 홍어를 먹는 사람들이 생겼다. 냄새가 아니라 건강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처음 오픈하던 날 침을 뱉던 그 골목이, 지금은 사람들이 줄 서는 골목이 됐다.

두 분의 나이는 이제 70대다.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다면,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상태를 추구할 것이고, 머지않아 주변 사람들까지 그 열정에 감화될 것이다."


그 시간의 가치

최근에는 주변에 경쟁 가게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그 가게에 쏟으신 시간과 가치는 어떤 경쟁자도 따라올 수 없다. 25년이라는 세월이 쌓인 곳이니까.

가게 앞에 침을 뱉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 가게의 단골이 됐을지도 모른다. 인식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버텨낸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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