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직장, 서울에서의 완패
대학을 졸업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영화를 좋아했고, 그 속에 나오는 배경 장소가 늘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이 저 공간을 만들었을까. 찾다 찾다 발견한 직업이 아트디렉터였다. 시각적인 요소와 창의적인 방향을 총괄하는 전문가. 하나의 요소에 국한되지 않고 넓게 보는 디자인 감각. 그게 나를 설레게 했다.
바로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졸업장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행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는 사람이 이모밖에 없었다. 이모집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생활을 시작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새벽에 퇴근해서 지하철 막차를 타고 돌아오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런데 6개월이 지나 받은 첫 월급날. 이 업계는 하나의 작품에 급여를 받는 시스템이라 6개월을 자비로 다녀야 했다. 이모집 월세, 교통비, 식비. 숫자를 계산해보니 이미 마이너스였다. 카드 빚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물었다.
"원래 그런 거야. 버티면 이기고, 못 버티면 지는 거야."
체력은 바닥났다. 빚은 쌓였다. 결국 사회 첫 번째 싸움에서 완패했다.
두 번째 직장, 해외연수 간다고 사람을 정리하는 회사
부산으로 돌아와 재정비를 했다.
교수님의 소개로 A회사 면접을 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했다. 이번엔 다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지방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쓴맛이 있었기에 더 열심히 했다.
입사 11개월 차 어느 날, 대표님이 사무실 직원 모두를 회의실로 불렀다.
"해외연수를 가게 됐다. 불가피하게 회사를 정리한다."
정리해고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는 매년 봄이면 사람을 뽑고, 연말이면 정리했다. 나는 그 사이클 안에 들어간 것이었다.
두 번째 완패.
세 번째 직장, 태어나서 처음 울었다
두 번의 쓴맛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서울의 세 번째 회사에 취직했다. 도시를 디자인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번엔 내 디자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어느 날 B 대표님이 나와 동료 A를 회의실로 불렀다.
"둘의 스케치가 비슷하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같을 수 있냐."
서로 공유한 적도, 같은 공간에서 그린 적도 없었다. 둘 다 어안이 벙벙한 채 회의실을 나왔다.
며칠 뒤 팀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작은 회의실이었다.
"미안하다. 같이 갈 수가 없겠다."
그 자리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왜. 부산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 좁은 회의실 안에서 혼자였다. 초라한 내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렇게 사회와 등을 돌렸다.
네 번째 직장, 복지의 달콤함으로 가면을 쓴 회사
한동안 방황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한 약속이 있었다. 밤늦게 일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눈에 띄는 공고가 있었다.
주 5일 근무, 야근 없음.
믿기지 않았다.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동료들과 금세 친해졌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정말로 야근이 없었다.
첫 급여날. 부모님께 뭘 사드릴지 퇴근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동료들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퇴근 시간이 다 돼도 급여는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총무과로 찾아갔다. 직원이 나를 작은 회의실로 데려갔다.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는 급여를 2개월 뒤에 지급합니다."
그제야 깨달았다.
또.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임계점이 온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지금 15년째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실패의 고통은 피했을지 몰라도,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도전했다. 지금도 성장 중이다.
밖에서 답을 구하지 말자.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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