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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70대 아버지의 전화 — 계좌는 개설해드리지 않았다

by 우노디야(백운호) 202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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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아버지의 전화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아들아, 요즘 장이 좋지 않은데. 증권계좌 하나 개설해줄 수 있겠냐."

누나를 통해 주문하다 보니 한발 두발 느리다고 하셨다. 직접 하면 더 빠르고 편하지 않겠냐고. 그 말투가 익숙했다. 아버지 특유의, 부탁인지 질문인지 모를 그 말투.

나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한 다리 거쳐서 주문하는 게 좋아서 권유드렸던 거예요. 괜찮으시겠어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틈에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저한테 늘 그러셨잖아요. 모든 투자는 신중히, 급하게 서둘러서 얻어지는 건 없다고. 그 말씀 아직도 가슴에 새기면서 투자하고 있습니다."

계좌는 개설해드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투자 논리

그러자 아버지가 다른 걸 물으셨다. 지금 들고 있는 주식, 팔 때가 안 됐냐고.

왜 그 종목을 사셨냐고 여쭤봤다.

"사람들은 쉽게 담배를 못 끊는단다. 그래서 샀다."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하신지.

"그러면 아버지 친구분이 담배를 끊으실 때 파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잠깐 웃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요즘 장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이것저것 사고 싶어. 내가 욕심이 많아졌구나."

"저도 사고 싶은 건 많습니다. 다만 굳이 수익을 조금씩 주는데 팔 이유가 없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 밥이나 묵자."

타지에 있어서 자주 못 찾아뵙는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빨리 밥이나 먹자고 하셨다. 그게 아버지 방식의 괜찮다는 말이라는 걸 안다.

전화를 끊고 잠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방이 조용했다.


나는 늘 3차선이다

후배가 밥을 먹다가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배, 또래 다 진급하는데 그렇게 살면 재밌냐."

다른 후배는 복도에서 나를 붙잡고 말했다.

"일은 그렇게 기준, 기준 따라 하는 거 아니라고."

아내도 운전하다가 물었다.

"오빠는 왜 클랙슨을 안 울려? 저 차 진짜 답답하지 않아?"

네, 이게 저입니다.

나는 1차선으로 과속하는 것도, 2차선에서 기회를 엿보며 끼어드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늘 3차선이다. 속도는 일정하게, 방향은 흔들리지 않게.

답답해 보일지 모른다. 느리게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방향은 같다.

갓길로 가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야 빨리 성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기준과 원칙을 어기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도로에서 갓길은 비상용이다. 나는 그런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 생활의 정치는 단 하나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


기본이 전부였다

대학교 때는 몰랐다.

화려한 3D 렌더링, 포토샵 리터치 기술. 그것들이 남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정교한 그래픽을 만들면 뭔가 우위에 있는 것 같았다.

막상 현업에 나와보니 달랐다.

인테리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이었다. 구조 형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비용을 관리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CG 정말 대단히 멋집니다."

이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대신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

"공사가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화려한 기술로 본연의 기본을 덮지 말자. 투자도 마찬가지고,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담배 주식 하나 들고 느긋하게 앉아 계신 것처럼.


불완벽주의자가 되어라

완벽주의자는 미움만 받고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실패하는 건 당연하다. 부족함을 개선해나가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하루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한 하루를 살면 된다.

부자도 시간이 있고, 평범한 사람도 시간이 있다. 그 평등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차이를 만든다.

결코 늦지 않았다. 3차선을 달리는 사람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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