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2 때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미술을 하고 싶다고.
유치원 때부터 크레파스를 잡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 마음을 오랫동안 묻어뒀다가 꺼낸 것이었다. 인문계에서 예체능으로 간다는 말에 부모님의 반대는 거셌다.
"한 번만 저를 믿어 주시겠어요?"
그 한마디로 설득했다. 다음 날 바로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야구방망이에 엉덩이가 부을 정도로
학원 첫날부터 느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예술고 출신이었다. 눈을 감고도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나는 연필 쥐는 힘 조절부터 달랐다.
선생님은 엄격했다. 못 그리면 맞았다. 야구방망이에 엉덩이가 부을 정도로.
한 번은 너무 맞아서 집에 가는 길에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빠르게 걷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멈추더니 물었다.
"학생 괜찮아? 차에 태워줄까?"
그 말에 눈물이 터졌다. 억지로 참았다. 현관문 앞에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신발을 벗었다.
그날 밤 셋이 울었다. 부모님은 당장 학원에 달려가겠다고 하셨고, 나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흘렀다.
2년 동안 정면만 외웠다
남들보다 시작이 늦었다. 예술고 출신들은 이미 몇 년을 앞서있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모든 석고상의 정면만이라도 다 그려보자.
어차피 모든 각도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하나만이라도 완벽하게 하자. 매일 학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남아서 그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눈을 감으면 석고상의 선들이 보였다. 2년 동안 그랬다.
실기시험 날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손을 비볐다. 석고상이 배정됐다. 번호표를 뽑는 손이 떨렸다.
자리에 앉았다. 앞을 바라봤다.
완전 측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옆 친구들은 이미 연필을 들고 시작했다. 나는 몇십 분 동안 연필만 쥔 채 석고상을 바라봤다.
그러다 잠시 생각했다.
2년 동안 정면을 외웠다. 지금 측면에서 보고 있지만, 이 석고상의 정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안다.
그리기 시작했다. 종료 소리가 들렸다. 연필을 놓았다. 완성했다.
뒤에 앉은 친구가 일어나서 내 그림을 들여다봤다.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완전 측면 석고상 앞에서, 내가 그린 그림은 완전 정면이었다.
끝까지 완성했기 때문에
당시 채점 방식은 모든 그림을 바닥에 깔아놓고 채점하는 방식이었다.
합격했다. 무엇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하고, 디자인 학부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첫발을 내딛었다.
직업과 꿈은 다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를 느꼈다.
직업이 꿈이 되면 삶은 허무해진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나의 꿈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디자인을 좋아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여러분은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 있나요?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 — 토마스 에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