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세이3 [일상일기] "가져가라" 한마디 — 컴퓨터를 제일 사랑하는 형이 내어준 것 형아, 미안한데 컴퓨터 하나만새벽 4시, 불을 켜지 않은 거실이다.모니터 불빛만 하얗게 켜져 있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조용한 집 안에 울린다. 딸아이는 방에서 자고 있고, 아내도 잠들었다. 이 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작업을 하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이 컴퓨터.형 거다.형아, 미안한데 컴퓨터 하나만 알아봐줄 수 있어?시작은 그 한마디였다.컴퓨터가 필요해서 형한테 말을 꺼냈다. 그냥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 뭘 사면 좋은지 알아봐 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형이 내어준 건 정보가 아니었다. 형 본인의 컴퓨터였다."나는 노트북 쓰면 되니까. 가져가라."딱 그게 전부였다. 더 설명도 없었고, 아쉬운 내색도 없었다. 형은 원래 그렇다.우리 집에서 형은 컴퓨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다. 조립부터 프로그램까.. 2026. 4. 2. [일상일기]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먼저 가는 이유 — 185cm 아버지가 펑펑 운 날 나이가 들다 보니 주변 지인들의 부고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오늘도 부산에서 대학 후배의 부친께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결혼식보다 장례식 참석이 내게는 더 소중하다. 결혼식도 새로운 삶의 시작을 축복하는 자리라 참석은 하지만, 꼭 가야만 한다면 장례식을 택한다.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슬픔 속에서도 관계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서로를 위로하며 나누는 인간적인 교감은 그 어떤 자리보다 깊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고, 고인의 생애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관 속 체험한때 관 속 체험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죽음을 직접 체험하며 삶.. 2025. 1. 12. [일상일기] 2년 동안 정면만 외웠다 — 실기시험 날 완전 측면 석고상을 만났다 고2 때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미술을 하고 싶다고.유치원 때부터 크레파스를 잡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 마음을 오랫동안 묻어뒀다가 꺼낸 것이었다. 인문계에서 예체능으로 간다는 말에 부모님의 반대는 거셌다."한 번만 저를 믿어 주시겠어요?"그 한마디로 설득했다. 다음 날 바로 미술학원을 등록했다.야구방망이에 엉덩이가 부을 정도로학원 첫날부터 느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예술고 출신이었다. 눈을 감고도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나는 연필 쥐는 힘 조절부터 달랐다.선생님은 엄격했다. 못 그리면 맞았다. 야구방망이에 엉덩이가 부을 정도로.한 번은 너무 맞아서 집에 가는 길에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빠르게 걷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멈추더니 물었다."학생 괜찮아? 차에 태워줄까.. 2024. 12.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