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0시였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냄새부터 왔다. 김치, 멸치, 그리고 뭔지 모를 부산 냄새. 어머니가 밤을 새워 싸오셨다는 음식들이 크고 작은 봉지에 가득했다. 이사한 집도 보실 겸, 며칠 뒤 아이 생일도 있고, 겸사겸사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셨다고 했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시더니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그래도 와보니 괜찮네."
내심 안 좋은 집은 아닐까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 말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마음 좀 추스렸니?"
잠깐의 침묵 뒤에 어머니가 물으셨다.
과장 진급에서 탈락한 게 벌써 몇 달 전인데, 아직도 걱정이 되셨나보다. 나는 괜찮다고, 벌써 잊은 지 오래됐다고 했다. 마음은 아직 그렇지 않으면서.
부산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을 나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이런 순간에 뭔가 더 말하고 싶어도 잘 안 나온다. 그냥 "응, 괜찮아" 한마디가 전부였다.
4살짜리가 터뜨린 한마디
아내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밥을 먹고, 날씨가 좋아서 다 같이 산책을 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였다. 부모님이 광주에 도착하고 1시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신 적도 있다. 홍어 가게를 하시다 보니 늘 그 모양이다.
딸아이는 신이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꽉 잡고 볼에 뽀뽀를 퍼부었다. "세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일 좋아!" 하면서.
내가 못하는 효도를 저 녀석이 대신 해주는 것 같아서, 웃기면서도 짠했다.
걷다가 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가족이 다 모여서 행복해."
4살짜리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어른 넷이 한 박자 늦게 빵 터졌다. 가끔 이 녀석이 나오는 말들이 왜 이렇게 어른스러운지. 그리고 왜 이렇게 정확하게 찌르는지.
홍어냄새 나는 돈봉투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봉투를 내미셨다.
일전에 부산에 내려갔을 때 내가 거절했던 그 봉투였다. 살림에 보태라고 주시는 봉투. 받을 수가 없어서 두고 왔었는데, 다시 나한테 돌아왔다.
봉투에서 홍어냄새가 났다.
두 분이 하도 강하게 나오셔서 결국 받기는 했는데,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형이랑 누나는 부산에 있으니 그래도 가까운데,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매번 걱정이 되시는 것 같다. 해드린 것도 없는데.
딸이 차 문 닫히기 전에 외쳤다.
"곧 갈게 할머니! 곧 갈게 할아버지!"
시간이 너무 빠르다
어느새 3월이다. 봄이 왔다.
그 시간만큼 부모님도 나이가 드셨다. 오늘 산책하면서 보니,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으셨다. 같이 여행 가야 되는데, 효도 좀 해야 되는데. 늘 말뿐이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나이는 한 자리씩 쌓인다.
언젠간 나도 부산에서 살 수 있을까. 부모님 가까이서.
아버지,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진짜로.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