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힘차게, 자신 있게
어릴 적에 웅변·미술 유치원을 다녔다. 집이랑 가까워서 형이랑 같이 다닌 곳이다.
그때 녹음된 오디오 테이프가 아직도 있다. 가끔 꺼내 들으면 작고 째지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힘차게! 자신 있게!"
그 덕분이었는지 중고등학교 발표도, 대학교 과제 발표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교단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크게, 또렷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준다고 배웠고, 실제로 그랬다.
사회에 나와서는 말없는 말이 좋아졌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달라졌다.
크게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듣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졌다. 상대방이 스스로 얘기하는 걸 들을 때 시간이 잘 간다.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대화가 흐른다. 그 편안함이 좋아졌다.
어느 날 아는 동생이 밥을 먹다가 말했다.
"형은 왜 말이 잘 통하냐."
젓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나 네 얘기만 듣는데 뭘 잘 통하냐."
"아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형하고 가족 말고는 잘 없어요."
생각해보면 그날 한 시간 동안 내가 한 말은 겨우 이 정도였다.
"응 맞아. 아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해."
그게 전부였다.
화려한 말보다 잘 듣는 것이 팔린다
어느 자동차 영업사원이 있었다.
다른 영업사원들은 쇼룸 안으로 들어서는 고객을 붙잡고 신차 스펙을 읊기 시작한다. 엔진 배기량, 옵션 구성, 연비, 안전 등급. 준비해온 멘트를 쏟아낸다. 고객은 점점 표정이 굳어간다.
그 영업사원은 달랐다. 고객이 차를 둘러보는 동안 조용히 옆에 서서 이렇게 물었다.
"같이 오신 분이 누구세요? 차 사면 어디로 여행 가고 싶어요?"
고객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 이야기 속에서 영업사원은 이 사람에게 어떤 차가 맞는지를 자연스럽게 파악했다.
말은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따라 마음이 열린다. 그 마음이 열렸을 때 비로소 물건이 팔리는 마법이 생긴다.
잘 듣는 사람이 드문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부족하고, 반응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말 잘하는 예시로 자주 나오는 이유도 단순한 경청이 아니라, 듣고 리액션을 하기 때문이다. 그 리액션은 많이 알아야 가능하다. 상대방이 말한 것에 정확히 반응하려면, 먼저 제대로 들어야 한다.
말 잘하는 다섯 가지 방법
공감할 준비를 하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판단, 선입견, 충고하고 싶은 생각을 모두 비워라. 이미 결론을 내린 채 듣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상대를 인정하라.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라.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말하기를 절제하라. 말을 배우는 데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잠깐 참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질이 달라진다.
겸손하게 이해하라. 겸손하면 들을 수 있고, 교만하면 들을 수 없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방의 말이 들어온다.
온몸으로 응답하라.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게 아니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적절한 표정을 짓는 것.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반응하는 것이 경청이다.
경청의 핵심은 키워드다
"오늘 점심에 새로 생긴 즉석 떡볶이집 가봤거든? 차돌 떡볶이가 예술이야. 가격도 괜찮았어. 다음에 같이 가자."
이 짧은 말 안에 핵심 키워드가 있다. 새로 생긴 곳, 차돌 떡볶이, 가격, 같이 가자.
단순히 떡볶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람은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생겼고, 그걸 나눠주고 싶은 것이다. 그 의도를 이해하면 대화에 자연스럽게 몰입된다.
"차돌이랑 떡볶이 조합이 되네? 같이 가자, 언제 시간 돼?"
이 한마디가 나 잘 듣고 있어요라는 신호가 된다.
말은 적게, 듣는 것은 깊게. 그게 말을 잘하는 방법이다.
'투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투자일기] 똥냄새 나는 현장이 알려준 투자의 진리 —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기회다 (2) | 2024.12.20 |
|---|---|
| [투자일기]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이유 — 추마인가, 아주르인가 (5) | 2024.12.18 |
| [투자일기] 학사경고에서 과대표 연임까지 — 그 과정이 나를 만들었다 (1) | 2024.12.17 |
| [투자일기] 낚싯배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 절실함과 집착의 차이 (0) | 2024.12.15 |
| [투자일기] 데생처럼 투자하라 —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법 (0)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