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사택에서 살았다.
공장 옆에 붙어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복도를 지나면 기름 냄새가 배어있었고, 여름밤에는 창문을 열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1층에 5가구, 2층에 2가구가 공용 화장실 두 개를 함께 썼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 줄이 섰던 기억이 난다.
장마가 오면 침수는 연례행사였다. 겨울엔 연탄 보일러를 갈 때마다 손에 검은 가루가 묻었다. 2남 1녀를 키우시면서 아버지는 회사에서, 어머니는 그 회사 지하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하셨다. 그 환경에서 우리를 키워주셨다는 게, 지금도 생각하면 놀랍다.
청천벽력 같은 해고 통보
어느 날 회사가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
두 분이 같은 회사에 다니고 계셨으니, 해고 통보 하나로 두 분이 동시에 실직하셨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막 졸업했고, 누나와 형은 대학생이었다.
짐을 싸는 날, 좁은 복도를 오가며 짐을 들어 나르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낯설었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밤새 상의하신 끝에 내리신 결론은 하나였다.
어머니의 전라도 음식 솜씨를 살려 작은 가게를 여는 것. 그 음식이 홍어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하는 음식. 호불호가 극명하고 어르신들만 찾는다는 음식. 그것도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 부산에서. 내 눈에는 그냥 무모함이었다.
친구한테 자랑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나 커피숍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다르게 보셨다.
"기왕 하기로 한 거면 잘해서 생존하면 되는 거란다. 냄새나서 남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아이템이 승산이 있을 거야."
가게 앞에 침을 뱉던 사람들
오픈 이후 반응은 냉혹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코를 막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 음식이 말이 되냐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날은 가게 앞에 침을 뱉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멱살을 잡히기도 하셨고, 퇴근길 택시에서 승차 거부도 수없이 당하셨다.
학교를 다녀오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모님께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괜찮다, 괜찮다. 언젠가는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거다."
지쳐 보이는데도 웃고 계신 그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다.
25년의 뚝심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한 가게에서 25년을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단골손님이 더 많아졌다. 젊은 사람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경상도 말로 대화하면서 홍어를 먹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 오픈하던 날 침을 뱉던 그 골목이, 지금은 사람들이 줄 서는 골목이 됐다.
두 분의 나이는 이제 70대다.
아버지가 하신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다면,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상태를 추구할 것이고, 머지않아 주변 사람들까지 그 열정에 감화될 것이다."
시간이 가장 큰 자산이다
최근에는 주변에 경쟁 가게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 가게에 쏟으신 25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경쟁자도 따라올 수 없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좋은 종목을 믿고 오래 들고 있는 것,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것 — 그게 결국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인식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버텨낸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
"인내와 시간은 어떤 힘이나 열정보다 강하다." —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