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어의 정의
대한민국에서 특히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유명한 생선이자, 음식 재료입니다.
가오리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연골어류에 속하며, 홍어는 주로 서해와 남해에서 서식하며, 전라남도의 진도, 흑산도 등이 주요 어획지 입니다. 홍어는 발효음식으로, 특유의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암모니아 냄새와 맛으로 유명합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함량이 낮아 건강식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전라남도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으로, 특히 홍어회, 홍어삼합(홍어, 돼지고기, 묵은지의 조합), 홍어찜 등으로 즐깁니다.
특유의 냄새와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강한 냄새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2. 부모님의 첫 직장과 그 이후
어릴 적 저희 가족은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2남 1녀를 키워오신 저희 부모님은 하루빨리 내 집마련을 위해서, 늘 밤늦게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사택에서 열심히 돈을 모으셨고, 어머니는 그 회사의 지하식당에서
열심히 돈을 모으셨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동네에서 저희를 키워주셨는지 늘 놀랍습니다.
공장옆에 있는 사택은 공용 화장실 2개(남. 여), 1층에는 5 가구, 2층에는 2 가구로 총 7 가구로 모두가 같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당시 집에는 화장실이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사용을 해야 되었고, 매년 여름만 되면 침수가 되는 것은 기본이고, 겨울이 되면 보일러 연탄을 수없이 바꿔야 되는 동네였습니다. 여러 가구가 같이 살아서 인지, 그런 환경이 열악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절의 추억은 많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부산에 가면 그 동네를 가면서 추억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어느 날 회사가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어서, 청천벽력 같은 해고통보가 저희 집에는 도착하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부모님은 같은 회사에서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두 분 다 실직을 하셨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열심히 두 분이 모으신 저축금액과, 그 당시 저는 고등학생3학년 졸업생이었고, 누나하고 형은 대학생이었습니다. 며칠뒤 저희는 불가피하게 사택을 떠나야만 했고, 작은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리저리 무엇을 하실까 밤새 고민을 하셨고, 상의 끝에, 어머니의 전라도 음식솜씨가 있었기에 작은 가게를 오픈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드린 "홍어" 음식점입니다.
남들이 냄새나서 싫어하는 요리, 호불호가 명확하고, 어르신들만 찾는다는 요리, 무엇보다, 전라도 지역이 아닌, 경상도 지역에서 홍어를 하겠다는 무모함의 모든 부분이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3. 홍어의 색깔은 무채색입니다
시장옆에 작은 가게를 인수하고 마침내 가게를 오픈하였습니다.
당시에 유명한 프랜차이즈도 많았고, 여러 선택지도 있었지만, 저희 부모님은 홍어가게를 오픈하였습니다
내 심 커피숍이라던가 유명한 프랜차이즈를 해서 친구에게 자랑도 하려고 했지만, 저의 바람과는 달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기왕 하기로 한 거면 잘해서 생존하면 되는 거란다"
"냄새나서 남들이 할 수 없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홍어라는 아이템이 승산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가게 주변을 걸으면 냄새난다고 코를 막았고, 여기가 경상도인데, 전라도음식이 말이 되냐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가게 앞에 침을 뱉는 사람도, 심지어 아버지의 멱살을, 잡히시는 것도 많았습니다.
퇴근길에 택시를 타면 승차거부도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어머니는 저희를 위해, 홍어가게를 지속 운영 하였습니다.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괜찮다, 괜찮다, "언제 가는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할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지역색이 너무 강해서, 전라도 사람이, 부산에 와서, 그것도 홍어가게를 한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홍어 같은 xx였습니다.
4. 25년의 뚝심과 건강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 가게에서 25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신 것도 대단하신데, 단골손님들이 더 많이 진 것도 놀라웠습니다.
더욱더 존경하는 건 두 분의 나이가 어느덧 70대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 조금씩 늘어나는 젊은 사람들, 경상도 말을 하면서 먹는 사람들,
건강한 냄새가 난다는 사람들,, 조금씩 이렇게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당시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가슴속에 되새겨 봅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다면,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상태를 추구할 것이고, 머지않아, 주변사람들까지도
그 열정에 감화될 것이다"
최근에는 주변에 경쟁점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부모님께서 쏟으신 가게의 그 시간과 가치는 더욱더 빛날 듯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