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람을 무시하는 날
연차를 냈다. 핸드폰이 아침부터 울렸다. 무시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이걸 아는 데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안다. 그래서 안 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충전이다
TV를 껐다. 음악도 틀지 않았다.
아이도 없고, 아내도 없는 조용한 집.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소파에 앉았다. 창밖으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어디선가 비 냄새 같은 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는 이걸 보면서 "저게 쉬는 거야?" 할 수 있다. 맞다. 나한테는 이게 가장 나다운 회복의 방식이다. 여행도 좋고 산책도 좋지만, 결국 나를 가장 빠르게 충전시키는 건 아무 소리도 없는 공간에서 생각을 그냥 풀어놓는 시간이다.
100미터에서 마라톤으로
신입사원 때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살았다.
주말에도 나가고, 퇴근 후 밤늦게까지 일하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쏟아부었다. 그때는 그 시절만의 체력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다. 숨이 턱까지 차도 다시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40대가 되고, 육아까지 병행하면서 달라졌다. 100미터 전력질주를 무한 반복하면 몸이 버티질 않는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완주를 목표로 달리는 마라톤이 훨씬 더 나와 잘 맞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가정, 회사, 투자. 세 가지를 동시에 달려야 하는 지금.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오래 달리는 게 더 중요하다.
체력은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근데 그 말이 체력에까지 적용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이 흐려지고, 피곤함이 더 빨리 찾아온다. 어느덧 3월이 지나고 4월이 됐다. 열심히 달린 것 같은데, 뭔가 성과가 없는 것 같은 그 찜찜한 느낌. 아마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알 거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긴다. 오늘 같은 날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두 달 동안 어디서 에너지가 샜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체력 관리가 결국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멈추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쉬는 날이 아깝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
나도 그런 마음이 든다. 연차 낸 날 아무것도 안 하면, 왠지 하루를 날린 것 같은 기분. 그런데 마라톤 선수도 레이스 중간에 물을 마신다. 잠깐 멈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주를 위한 준비다.
오늘 하루는 그런 날로 쓰기로 했다. 커피 한 잔, 조용한 집,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달리는 것만큼, 멈추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투자일기] 단순해져라 — 스틱에서 시작된 투자 이야기 (1) | 2025.03.22 |
|---|---|
| [투자일기] 한 명씩 사라지는 선배들 — 나가서 뭘 하지보다 중요한 질문 (1) | 2025.03.20 |
| [투자일기]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시작되는 시간 — 폭싹 속았수다 (0) | 2025.03.17 |
| [투자일기] 배달 올 때마다 따라오는 빨간 캔 — 업소용 코카콜라의 모든 것 (1) | 2025.03.11 |
| [투자일기] 무관심이 매력이 되는 이유 — 연애와 자존감 그리고 성숙 (1) | 2025.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