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시장
대전에서 일한 지 꽤 됐는데 중앙시장 앞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제대로 들어간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퇴근하고 가볍게 먹자고 했는데 시장 쪽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했다. 평일 저녁인데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길이 좁은 시장 골목 사이로 상인들의 목소리, 튀기는 기름 냄새, 색색의 간판들이 뒤섞여 있었다. 대전역과 걸어서 5분 거리라 여행객과 직장인, 현지 주민이 뒤섞여 활기가 넘쳤다.
한국전쟁이 만든 중부권 최대 시장
대전중앙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대전으로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 시장이다.
사람이 몰리면 거래가 생기고, 거래가 생기면 시장이 된다. 그 흐름이 70년 넘게 이어진 곳이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대전역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목인 대전에 전국의 상인과 소비자가 모였고,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현재는 11만 3,621㎡ 면적에 2,700여 개 점포가 운영 중이고, 하루 방문자가 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부권 최대 전통 시장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걸으면서 보면 신기한 것들이 많다. 오래된 한복집, 건어물 가게, 원단 시장, 먹거리 골목이 층층이 얽혀 있다. 오랜 시간이 쌓인 가게들 특유의 냄새와 질감이 현대식 쇼핑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부산 깡통시장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깡통시장은 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온 외국 물품과 통조림이 거래되면서 만들어진, 이국적인 색깔이 강한 시장이다. 대전중앙시장은 그보다 더 토착적이고 일상적인 분위기에 가깝다. 두 시장 모두 역사는 비슷하지만 각자의 결이 다르다.
스모프치킨 — 간장인 듯 양념인 듯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주변 치킨 맛집을 검색했다. 스모프치킨이 뜨길래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 안쪽에 있는데, 마치 부산 시장 골목 안 치킨집 같은 느낌이었다. 기름 냄새가 진하게 퍼지고, 가게 안은 테이블이 빼곡했다. 주방에서는 치킨 튀기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BEST라고 적혀있는 쫄간장 치킨을 주문하고 맥주를 곁들였다.
한 입 먹었을 때 첫 느낌은 달콤하고 짭짤한 간장 소스가 닭에 깊이 배어있는 것이었다. 교촌 간장치킨처럼 깔끔한 간장 맛인가 싶었는데, 먹다 보면 양념치킨 특유의 약간 매콤하고 달콤한 뒷맛도 함께 올라온다. 두 가지가 묘하게 섞인 독특한 맛이다. 겉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옆 테이블에서 외국인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걸 봤다. 확실히 맛은 있다. 재방문 의사가 생긴 치킨이다.
배가 너무 불러서 시장 길거리 음식을 못 먹은 건 두고두고 아쉬웠다. 다음에 오면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돌면서 먹거리를 먼저 훑어보고 들어가야겠다.
차 없이 걸어서 즐기는 대전 반나절 코스
대전에 놀러 온다고 하면 이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성심당 → 대전중앙시장 → 스모프치킨 or 길거리 음식 → 대전역.
성심당에서 튀김 소보로와 부추빵을 사고, 중앙시장 골목을 걸으면서 길거리 음식을 하나씩 먹고, 저녁에 시장 안 치킨집에서 맥주 한 잔 하고, 대전역으로 걸어가면 된다. 전부 도보로 연결되는 동선이라 차가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대전이 출장지가 아니라 여행지가 되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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